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문단 편집) === 맨스플레인은 여성 대상 폭력의 연장선이다 === 그런데 이와 같은 극심한 여성 대상 폭력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자신이 겪는 [[성범죄]]에 대해 증언하려 할 때마다 무시당하고 거부당하며 침묵당한다.''' 일찍이 앤드리아 드워킨이 《[[포르노그래피]]》 에서 지적했듯이, 여성들의 증언을 귀담아듣기 위해서는 먼저 [[잠재적 가해자|광범위한 남성들이 모두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인정해야만 했고,]] 결국 남성들은 여성의 증언을 기각하는 훨씬 더 쉬운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저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은 여성들이야말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카산드라]]의 처지라고 말한다. '''[[예언]]을 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그 예언을 믿어주지 않는 카산드라의 처지가 오늘날 여성들과 똑같다는 것.''' 여성들은 결국 자신의 침묵을 깨기 위해서는 '''3층의 억압 구조'''를 돌파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첫째,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억제하고, 억누르고, 수치심을 느끼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둘째, 입을 연 여성들을 침묵시키기 위해 창피와 모욕을 주거나 [[명예살인|심지어 생명을 빼앗기도 하는데]]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셋째, 우리 사회 그 자체가 여성의 증언의 신빙성을 공격하기 때문에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처럼 여성이 입을 여는 것이 어렵다는 점은 [[1980년대]] 들어 여성계에서 크게 부각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오히려 혼란만이 더욱 초래되었다고 한다. 그때만 하더라도 저 [[1983년]]에 [[로스앤젤레스]]를 강타했던 [[맥마틴 보육원 아동학대 논란|맥마틴 보육원 사건]]에서처럼, 당시의 여성계는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어떻게 말을 꺼내게 할 것인지, 어린이와 같은 취약한 피해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인식이 태부족했고, 수사 당국과 사법부가 성범죄 사건에 대해 얼마나 책임의식과 전문성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혼란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성들의 인식 수준은 더더욱 처참할 정도여서, [[1991년]]에 [[클래런스 토머스]]의 청문회 자리에서 [[성희롱]] 의혹의 피해자로 나선 인물 애니타 힐(A.Hill)은 공화당 의원들과 보수 언론인들에게 조롱과 면박을 당해야 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성희롱]]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희박했으며, 남성들은 그녀의 발언에 대해서 [[강간 신화|"실은 본인도 원했던 것 아니냐", "상상 속 이야기 아니냐"]] 라고만 반응했다고. 물론 오늘날 [[2010년대]]에는 그때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남성들은 피해자를 침묵시키려 하고, 침묵시키지 못하면 아무도 믿지 않게 하려고 하고, 그것조차 안 되면 "그 정도면 충분하니 이제 그만하고 미래로 나아가자" 고 멋있게(?) 제안한다고 한다. 저자는 5장에서 '''인류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여성들의 존재감과 목소리와 영향력은 철저히 배제되었다'''고 주장한다. 여성들은 가계도(족보)에서, 성서에서, 역사에서, 예술에서 말소되어 왔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프랑스]]의 법률용어 중 아내(feme-covert)는 여성으로서 남성의 보호 아래 '숨겨져' 있는 존재라는 어원을 가지며, 여성의 결혼생활(coverture)을 의미하는 단어 역시 '덮개', '가리개' 라는 뜻을 지닌 용어라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저자는 중동에서 여성에게 씌우는 베일을 언급하며, 이것은 가장 직접적으로 여성들의 존재를 말소하는 방식이라고 하였다. 그보다 간접적이고 상징적인 말소의 방법은, 여성들을 집 안에, 가사노동에, 양육활동에 가둠으로써 공적인 영역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그나마 여성들이 사회로 나설 수 있는 경우가 있긴 한데, [[아르헨티나]]의 콘도르 작전 당시 군부 정권에 의해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간 사람들의 어머니들이 "오월광장의 어머니들"(Mothers of the Plaza de Mayo)이라는 단체를 결성한 게 그 사례. 저자는 그나마 그것조차 '''[[모성애]]에 호소'''했으니 망정이었다고 탄식한다. 그러나 많은 [[인류창조신화]]와 민담, 전설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인 '[[거미]]' 와 '[[할머니]]' 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는 다시금 여성의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1장에서 저자를 유명해지게 만들었던 맨스플레인으로 되돌아가자. 이상의 생각을 저자가 품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남성에게 당했던 맨스플레인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지는 분명해진다. 남성들의 맨스플레인은 '''여성들에게 침묵할 것을 강요하는 경향으로 미끄러운 비탈길처럼 연결되어 있다.''' 맨스플레인은 여성들이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하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경청되지 못하게 하고, 여성들을 침묵으로 몰아넣고, 여성들이 자기불신에 빠지게 하고, 남성들에게는 과잉확신을 키운다. 극단적으로, 중동에서 여성의 증언은 아예 법적 효력 자체를 갖지 못한다. 저자가 보기에 [[페미니즘]]이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여성을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로 인식시키는 것이라고. 즉, 저자가 보기에 '''[[맨스플레인|여성들의 일상적 괴로움]]과 극단적 폭력 사이에는 연속선'''이 존재하며, '''남성들이 [[젠더 권력]]을 휘두른다는 사실은 이 두 가지를 동일한 것으로 취급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양쪽 모두, 남성들은 "나는 남자로서 이 여자의 말을 가로막고 입을 다물게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너는 여자로서 네 입을 열 권리가 없다" 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갈망이 그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 저자가 추신에서 밝히기로는, 본인 스스로도 맨스플레인에 대해 자신이 겪었던 재미있는 일화라며 가볍게 쓰기 시작한 글이 마침내 [[강간]]과 [[살인]]이라는 문제로 연결되었다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에서만 그들은 자신의 생존, 존엄,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기에, 저자는 앞으로의 페미니즘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폭력적으로 침묵시키려는 시도를 좌절시켜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